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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 백두대간 생태수목원

천상의 숲 소개

천상의 숲 이야기

우리나라의 숨겨진 보물, 잣나무 이야기

우리에게 '소나무' 하면 꼿꼿한 기상과 푸른 절개를 떠올리게 됩니다. 예부터 한반도의 산하를 지켜온 이 나무는 우리 민족의 심성과 기개를 상징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소나무(적송)를 넘어, 진정으로 이 땅의 이름을 품고 있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잣나무입니다. 서양에서는 이 나무를 Korean Pine이라고 부르며, 학명에도 '우리 땅의'라는 뜻의 koraiensis가 당당히 새겨져 있습니다. 이처럼 잣나무는 그 이름부터 우리와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오엽송, 솔잎 한 묶음 속에 숨겨진 정체성

소나무 종류의 나무들은 솔잎이 묶여 나는 독특한 특징으로 서로를 구분합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보는 소나무(적송)는 잎이 두 개씩 묶여 있습니다. 북미에서 온 리기다소나무와 중국의 백송은 세 개의 잎이 묶여 나는데, 리기다소나무는 과거 연료가 부족하던 시절 빠르게 자라도록 하기 위해 많이 심었습니다. 그렇다면 잣나무는 어떨까요? 잣나무는 다섯 개의 잎이 한 묶음으로 나기 때문에 오엽송(五葉松)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잣나무의 부드럽고 가늘며, 빽빽하게 모여 있는 솔잎은 외관상으로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척박한 고산지대의 혹독한 바람과 추위를 견디는 데에도 유리합니다. 이처럼 솔잎 한 묶음 속에 자신만의 굳건한 정체성을 숨기고 있는 잣나무는 우리에게 잣이라는 귀한 열매를 선사합니다.

해동송자(海東松子), 신라가 자랑한 보물

잣나무가 우리 민족에게 사랑받은 역사는 아주 오래되어 신라시대까지 올라갑니다. 당시의 강대국인 당나라가 속국처럼 생각하던 신라에 대해서 부러워했던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당나라에 유학 중이던 천재 학자 최치원을 공자에 빗대어 부르던 '해동공자​(海東孔子)'였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잣나무의 열매를 일컫는 '해동송자(海東松子)'였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K-팝과 드라마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이미 그 옛날부터 우리 잣나무는 그 열매의 귀함과 훌륭함으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샀던 것입니다. 한류의 원조라 할 수도 있겠지요.

잣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약재로도 귀하게 쓰였습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잣은 몸의 기운을 돋우고 오장을 튼튼하게 하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귀한 효능 덕분에 잣은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가거나 약식, 수정과와 같은 궁중 음식에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잣나무는 목재로서도 쓸모가 많아 신라의 찬란한 문화재인 불국사나 석굴암을 짓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잣나무의 목재는 곧고 무늬가 아름다워 가구 제작에도 널리 활용되었으며, 조선 시대 왕실에서는 잣나무 숲을 특별히 보호림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잣나무는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그 가치는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숲의 진짜 주인을 만나다

잣나무의 유익함은 우리 사람들에게만 그치지 않습니다. 잣나무 숲을 거닐다 보면 청솔모(청서), 다람쥐, 어치, 딱따구리 등 수많은 생명체들이 잣나무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특히 청설모와 다람쥐에게 잣은 겨울을 나는 데 가장 중요한 식량입니다. 잣나무는 가을이 되면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열매를 맺으며, 이 열매는 숲속 동물들에게 가장 중요한 먹이가 됩니다.

오래전에 산에서 떨어진 잣을 주워 가려다 청설모에게 쫓긴 경험이 있습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돌아보니, 작은 몸으로 "찍찍"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청설모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건 내 거야! 겨울을 날 내 양식이라고!"라고 외치는 듯했습니다. 결국 저는 잣을 다시 돌려줄 수밖에 없었죠.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숲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그 숲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라는 것을요. 잣나무는 그들과 우리 모두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너그러운 어머니와 같다는 것을요.

잣나무는 우리에게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쓰임이 있고, 기대어 사는 거대한 생태계의 그물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그물망의 가장 든든한 매듭 중 하나가 바로 잣나무 자신입니다. 잣나무는 우리 삶에 귀한 열매를 선사할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깊은 지혜를 전해줍니다. 우리가 잣나무를 보며 잠시 멈춰 서서 그 존재 자체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잣나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

숲속의 귀족, 은빛 여왕이 들려주는 이야기

매봉산 천상의 숲길을 걷다 보면 어둠이 내린 숲속에서도 홀로 환하게 빛을 발하는 나무를 마주하게 됩니다. 눈이 시리도록 하얀 수피를 두르고,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자태가 마치 고결한 선비나 우아한 귀족을 닮은 나무, 바로 ‘나무의 여왕’이라 불리는 자작나무입니다.

‘자작자작’ 타며 ‘화촉(樺燭)’을 밝히는 나무

자작나무라는 이름에는 참으로 정겨운 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껍질에 지질(lipid) 성분이 많아 불을 붙이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지요.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봇나무’ 혹은 ‘제낭’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백의민족이었던 우리에게 자작나무의 하얀 빛깔은 남다른 친숙함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자작나무는 단순한 식물을 넘어 인류의 문명을 밝히는 빛이자 기록의 도구였습니다. 한자어인 ‘화(樺)’는 자작나무 껍질로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우리가 결혼식에서 ‘화촉(樺燭)을 밝힌다’고 할 때의 그 ‘화’자가 바로 자작나무를 뜻합니다. 또한, 그 얇고 질긴 껍질은 종이가 귀하던 시절 훌륭한 기록 매체가 되었습니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며 우리에게 전해지는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가 바로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것이며, 영국에서 발견된 고대 불경 역시 이 나무의 껍질에 새겨져 세월의 풍파를 이겨냈습니다.

자작나무 가족들 - 박달나무, 거제수나무, 사스래나무

학명으로는 'Betula pendula'라 불리는 이 나무는 참나무목 자작나무과에 속합니다. 속명인 ‘Betula’는 라틴 고명에서 유래했으며, 종소명 ‘pendula’는 '늘어지다'라는 뜻으로, 가지 끝이 가늘게 아래로 처지는 특유의 수형을 반영합니다. 사실 자작나무과 가족들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자작나무는 잎이 선명한 삼각형 모양인 반면, 고산지대에서 만나는 거제수나무는 타원형 잎에 가로형 피목을 가졌지요. 둥근 피목의 사스래나무, 단단하기로 이름난 박달나무와 물박달나무, 그리고 좀자작나무와 백두산자작나무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북반구의 추운 지역을 꿋꿋이 지켜온 강인한 생명체들입니다.

자작나무에 살고, 자작나무에 죽는다

자작나무는 특히 북쪽 지방 사람들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자작나무에 살고 자작나무에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집을 지을 때 대들보로 쓰고, 너와집의 지붕 재료가 되기도 했으며, 농기구의 손잡이를 감싸 손을 보호해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삶을 마감한 이의 사체를 감싸안는 관대(棺帶) 역할까지 수행했으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과 동행한 나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뿐인가요? 자작나무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어 인간을 치유하기도 합니다. 이른 봄 채취하는 자작나무 수액은 달콤한 식용 음료나 술이 되고, 우리에게 친숙한 천연 감미료 자일리톨(Xylitol) 역시 이 나무의 껍질에서 추출한 성분이 으뜸으로 꼽힙니다. 또한, 나무에서 자라나는 상황버섯, 차가버섯, 발굽버섯은 폐암 등의 난치병에 효과가 있는 약재로 귀히 대접받습니다. 한방에서는 그 껍질을 ‘화피(樺皮)’라 하여 이뇨, 진통, 해독의 용도로 처방해 왔습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

자작나무의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입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은빛 수피를 더욱 맑게 닦아내는 그 기다림의 자세가 꽃말 속에 녹아 있는 듯합니다. 낙엽 활엽 교목으로서 25미터까지 당당히 자라나는 그 기개, 4~5월이면 황녹색 미상화서로 꽃을 피우고 9월이면 날개 달린 씨앗을 바람에 실어 보내는 그 섬세한 번식의 과정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한 편의 서사시와 같습니다. 오늘날 자작나무는 공원의 조경수나 가구의 재료, 종이의 원료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하지만 숲속에서 만나는 자작나무는 여전히 신비로운 아우라를 뿜어냅니다. 하얀 수피에 새겨진 검은 눈 모양의 흔적들은 마치 숲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여왕의 눈동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 마음이 답답하거나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날이 있다면, 자작나무 숲을 찾아보십시오. 곧게 뻗은 줄기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받으며,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속삭이는 은빛 여왕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작자작 타오르는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우리 내면의 상처도 어느덧 하얗게 치유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황금빛 침엽수의 노래: 일본잎갈나무가 건네는 용기

가을이 깊어가는 숲을 걷다 보면, 발밑으로 폭신하게 쌓인 황금빛 카펫을 만나게 됩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나무들이 온통 황금색 바늘잎을 두르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흔히 침엽수라고 하면 사계절 내내 푸른 ‘상록수’를 떠 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나무는 당당히 그 편견을 깨뜨립니다. 가을이면 잎을 갈아입고 겨울이면 스스로를 비워내는 나무, 바로 일본잎갈나무입니다.

낙엽송 - 잎을 가는 소나무

우리에게는 ‘낙엽송’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이 나무의 우리말 이름은 ‘잎갈나무’입니다. 말 그대로 ‘잎을 가는 나무’라는 뜻이지요. 소나무과에 속하면서도 낙엽성이라는 독특한 생태적 전략을 택한 이들은, 북반구의 냉온대와 아한대, 그리고 척박한 고산 지대를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영하 40도의 극심한 추위 속에서도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역설적이게도 ‘버림’에 있습니다. 겨울철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해 소중히 키워온 잎을 과감히 떨어뜨리는 유연함, 그것이 일본잎갈나무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타이가 생태계를 지탱하는 힘입니다.

강인한 전봇대 나무

이 나무의 학명은 Larix kaempferi입니다. 속명인 ‘Larix’는 고대 켈트어로 ‘풍부한 수지(lar)’가 있다는 의미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이름처럼 일본잎갈나무는 몸 안에 끈적하고 단단한 수지를 품고 있어 목질이 매우 단단하고 부패에 강합니다. 이러한 강인함 덕분에 일본잎갈나무는 과거 우리 현대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자원이었습니다. 줄기가 곧고 빠르게 자라며 쉽게 썩지 않아, 전국으로 뻗어나간 철도의 침목이 되어주었고, 깊은 광산의 갱도를 지지하는 버팀목이 되었으며, 우리네 삶을 연결하던 전신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잎갈나무와 일본잎갈나무

일본잎갈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구조 또한 흥미롭습니다. 이들은 장지와 단지라는 두 가지 형태의 가지를 가집니다. 길게 자라는 가지에서는 잎들이 어긋나며 자유롭게 뻗어나가고, 마디 사이가 아주 짧은 단지에서는 마치 작은 꽃다발처럼 20~50개의 바늘잎이 뭉쳐나며 독특한 외형을 만듭니다. 봄이면 이 단지 끝에서 연한 홍색의 암꽃과 황색의 수꽃이 피어납니다. 특히 가지 위에 곧게 서서 달리는 구과는 일본잎갈나무만의 특징입니다. 열매가 익어갈 때 위를 향해 당당히 고개를 든 모습은 마치 하늘을 향해 등불을 밝히는 듯한 경건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일본 원산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널리 심어진 일본잎갈나무는 구과를 감싸는 실편의 끝이 뒤로 젖혀지는 모양을 하고 있어, 곧게 펴진 잎갈나무와 구별됩니다. 실편의 개수 또한 50~60개로 더 풍성하지요. 잎 뒤쪽을 가만히 살피면 두 줄의 백색 기공선이 보이는데, 이것은 나무가 숨을 쉬는 통로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호흡하며 거대한 몸집을 키워내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그 작은 선 안에 담겨 있습니다.

햇빛을 좋아하는 ‘선구 수종(Pioneer species)’

이 나무는 또한 ‘선구 수종(Pioneer species)’으로 불립니다. 산불이 나거나 산사태가 일어나 숲이 폐허가 된 곳에 가장 먼저 찾아와 뿌리를 내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햇빛을 극도로 좋아하는 양수인 일본잎갈나무는 황폐해진 땅에 가장 먼저 도착해 숲의 기초를 세웁니다. 자신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후대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을 닦는 이들의 헌신 덕분에 숲은 다시 생명력을 회복합니다.

일본잎갈나무의 꽃말은 ‘대담’과 ‘용기’입니다. 시베리아와 캐나다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낙엽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 대담함, 황폐해진 나지에 가장 먼저 뿌리를 내리는 용기가 이 꽃말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곧게 뻗은 줄기 끝에서 하늘을 향해 달리는 열매를 보며, 우리는 시련 앞에서 스스로를 비워내고 다시 시작할 줄 아는 나무의 지혜를 배웁니다.

단풍이 절정에 이른 가을날, 숲속에서 일본잎갈나무를 만난다면 그 곧은 줄기를 한번 쓰다듬어 보십시오. 그리고 속삭여주십시오. 척박한 땅을 지켜내고 묵묵히 갱도를 받쳐주었던 그 강인한 목재의 삶에 대해, 그리고 매년 겨울을 나기 위해 소중한 것을 비워내는 그 대담한 용기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면 어느덧 내 마음속에도 일본잎갈나무가 내뿜는 황금빛 치유의 에너지가 따뜻하게 스며들 것입니다.

붉은 갑옷을 입은 숲의 제왕, 금강송이 건네는 위로

소나무의 속명인 ‘피누스(Pinus)’는 라틴어로, ‘산’을 뜻하는 켈트어 ‘핀(Pin)’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 이름처럼 소나무는 우리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지의 능선과 사면을 지켜온 민족의 나무입니다. 그중에서도 울진과 봉화, 태백 일대에서 자생하는 금강소나무는 소나무 중의 소나무로 꼽힙니다. 일반 소나무(육송)가 지형에 따라 구부러지며 자라는 것과 달리, 금강소나무는 오로지 하늘만을 향해 직립합니다. 생장이 비교적 느린 대신 나이테의 폭이 좁고 균일하며, 목질이 매우 치밀하고 단단합니다. 겉이 붉어 ‘적송(赤松)’이라 불리고, 속살은 짙은 황색을 띠며 송진 함량이 높아 잘 썩지 않기에 ‘황장목(黃腸木)’이라 불리는 이 귀한 나무는 조선 시대부터 궁궐의 대들보나 왕실의 관재로만 쓰이도록 국가 차원에서 엄격히 관리되었습니다.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 버티는 강인함

하지만 이 당당한 금강송의 이면에는 소나무라는 종이 가진 처절한 생존 전략과 아픈 현실이 공존합니다. 소나무는 햇볕을 지독하게 좋아하는 ‘극양수’입니다. 어릴 때는 성장이 빠르지만, 다른 나무의 그늘 아래서는 결코 자라지 못하는 고집스러운 성격이지요. 척박하고 건조한 땅, 물이 고이지 않는 산성 토양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강인함 덕분에 우리는 소나무를 보며 ‘불로장생’과 ‘굳셈’을 떠올립니다.

역설적이게도 숲에 소나무가 번성한다는 것은 그 땅의 지력이 그만큼 척박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를 두고 ‘소나무 망국론’이라 일컫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력이 다해 다른 활엽수들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 소나무만이 최후의 보루처럼 남게 된다는 뜻이지요. 자연이 파괴되어 사막화가 진행되기 직전의 지표 수목이 바로 소나무라는 지적은, 푸른 소나무를 바라보던 우리의 낭만적인 시선에 경종을 울립니다.

오늘날 소나무는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재선충병입니다. 솔수염하늘소의 몸에 붙어 이동하는 미세한 선충들은 소나무의 수관을 막아 수분 공급을 완전히 차단해 버립니다. 감염된 나무는 100% 말라 죽고 마는 이 치명적인 질병은 전국의 소나무 숲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소나무과 가족 중 하나인 ‘방크스소나무’는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오히려 번식의 기회로 삼는 ‘폐쇄구과’의 특성을 가졌습니다. 프라이팬 위에서 열을 가해야만 닫혔던 솔방울이 열리듯, 산불의 고온에 노출되어야만 종린을 벌려 씨앗을 퍼뜨리는 것이지요. 어쩌면 소나무에게 시련과 고난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자극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

금강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수백 년 세월을 이겨낸 나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8~9cm의 바늘잎 두 장이 단지에 뭉쳐난(속생) 모습은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3~5월이면 노란 수구화수 위로 진한 자주색의 암구화수가 피어나고, 수분 후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비로소 단단한 목질의 솔방울(구과)이 익어갑니다.

우리는 소나무의 잎과 꽃가루, 껍질을 식용과 약용으로 쓰고, 송진으로 염증을 다스리며 살아왔습니다. 숭례문이나 경복궁의 서까래에서 우리는 여전히 금강송의 숨결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소나무를 보살펴야 할 때입니다. 울진의 금강소나무 숲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엄격히 관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수필가 이양하 선생은 나무를 ‘덕을 가진 존재’라고 칭송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금강소나무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붉은 몸으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시련은 단단한 나이테를 만들고, 버팀은 곧은 줄기를 만든다고 말입니다. 오늘 마주한 금강송의 영원한 푸름이 내일의 우리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며, 붉은 수피 사이로 흐르는 송진 향에 마음의 짐을 잠시 내려놓아 봅니다. 우리 곁의 소나무가 재선충의 위협을 이겨내고 오래도록 굳건하기를, 그래서 민족의 정기가 깃든 그 붉은 빛이 영원히 바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우리 곁의 진짜 나무, 참나무 이야기

우리는 일상에서 '참나무'라는 이름을 자주 듣지만, 사실 참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단일 나무는 없습니다. 참나무는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등 여섯 형제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모두 도토리를 품고 있는 나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참나무라는 이름에는 '진짜 나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이름은 나무의 속명인 'Quercus(쿠에르쿠스)'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각자의 이름과 사연을 가진 나무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참나무들은 각자 독특한 특징과 흥미로운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상수리나무는 임진왜란 당시 피난길에 오른 선조의 수라상에 도토리묵이 올라가 '상수라(임금님의 수라상)'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척박한 피난길에서도 도토리가 임금의 식탁에 오를 만큼 중요한 식량원이었음을 보여주며, 상수리나무가 우리 민족의 삶과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지를 증명합니다. 그만큼 상수리나무는 어려움을 이겨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굴참나무는 나무껍질의 골이 깊어 '골참나무'라고 불리다 굴참나무가 되었습니다. 이 나무의 껍질은 두껍고 탄력이 좋아 와인병의 마개를 만드는 코르크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고, 굴피집이라 불리는 옛 지붕의 재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굴참나무는 두꺼운 코르크층 덕분에 산불이 났을 때도 속이 타지 않고 살아남는 놀라운 방어력을 자랑합니다.

떡갈나무의 넓고 큰 잎은 떡을 싸는 용도로 쓰일 만큼 넓어서 '떡갈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이 잎에는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성분이 들어있어 조상들이 음식을 보관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떡갈나무 잎은 여름에는 넓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에는 짙은 단풍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며, 겨울이 되어도 마른 잎을 오랫동안 달고 있어 작은 새들의 은신처가 되기도 합니다.

신갈나무는 참나무 중에서 여기 천상의 숲처럼 가장 높은 산에 서식합니다. 옛사람들이 짚신을 만들 때 발에 땀이 차는 것을 막기 위해 깔창으로 사용했다고 해서 '신을 깔던 나무'라는 의미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신갈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소나무 숲을 밀어내고 참나무 숲을 확장하는 '개척자'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나무들이 쉽게 자랄 수 없는 산등성이에서도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는 신갈나무는 강인한 의지와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갈참나무는 늦가을까지 잎이 달려 있고 황갈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가을 참나무'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다른 활엽수들이 잎을 모두 떨군 늦가을에도 홀로 풍성한 잎을 달고 서 있어 숲속의 늦은 가을을 장식하는 존재입니다. 이는 늦은 계절에도 숲의 생명력을 지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졸참나무는 잎과 도토리가 가장 작아서 '조그마한 참나무'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었지만, 작다고 얕볼 수 없습니다. 이 나무의 도토리는 크기는 작을지언정 묵을 만드는 재료 중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졸참나무는 크기와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삶과 함께하는 진짜 나무

참나무 6형제는 낙엽이 지는 활엽수이지만, 남부 해안과 제주도의 따뜻한 난대지방에는 잎이 항상 푸른 상록 활엽수 참나무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가시나무, 종가시나무, 붉가시나무, 개가시나무, 참가시나무, 졸가시나무 등으로 불리는데, 이 역시 참나무과-참나무속에 속하는 친척들입니다. 이 나무들은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어 숲에 생기를 불어넣고, 따뜻한 지역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참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산림의 30%를 차지할 만큼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유용한 나무입니다. 우리가 즐겨 먹는 삼겹살을 구울 때 사용하는 숯도 대부분 참나무로 만들어지며, 참나무 숯은 높은 화력과 은은한 향을 자랑합니다. 달콤하고 영양 가득한 밤을 주는 밤나무 역시 참나무와 같은 참나무과에 속하는 가까운 사촌입니다. 이처럼 참나무는 예로부터 우리 식생활, 문화, 산업 전반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진짜 나무'입니다.

생명들을 이어주는 그물망

참나무의 유용성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가을 숲에서 도토리를 주워 먹는 청솔모와 다람쥐, 딱따구리, 하늘소, 풍뎅이, 심지어 도토리거위벌레와 개미까지 수많은 생명들이 참나무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다람쥐나 청솔모는 겨울을 나기 위해 도토리를 땅에 묻는데, 미처 찾지 못한 도토리들이 새싹을 틔워 새로운 참나무 숲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참나무는 숲속 생태계의 풍요로움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존재입니다.

가시덤불 속에 감춘 붉은 보석

초여름의 햇살이 숲의 초록을 더욱 짙게 물들일 때쯤, 산길 가장자리나 볕이 잘 드는 공터에는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유혹이 숨어 있습니다. 거칠고 날카로운 가시덤불 사이로 고개를 내민 선명한 붉은 빛, 바로 산딸기(Rubus crataegifolius)입니다. 어릴 적 시골길을 걷다 손등이 긁히는 줄도 모르고 따 먹던 그 새콤달콤한 기억은 어른이 된 지금도 초여름만 되면 입안에 군침을 돌게 합니다.

선구식물, 코리안 라즈베리

산딸기속을 뜻하는 학명 '루부스(Rubus)'는 '빨강'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이름처럼 산딸기는 붉은 열매의 대명사입니다. 서양에서는 이를 '라즈베리(Raspberry)'라 부르며 즐기는데, 우리가 산에서 만나는 한국 산딸기는 '코리안 라즈베리'라는 고유한 이름을 가진 우리의 소중한 자생 식물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라즈베리와는 사촌 격이지만, 우리 산천의 거친 바람과 햇살을 견뎌낸 한국 산딸기는 그 특유의 야생미와 진한 향을 품고 있습니다.

산딸기는 숲의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선구 수종(Pioneer species)'입니다. 산불이 나거나 벌채가 이루어져 황폐해진 땅에 가장 먼저 찾아와 뿌리를 내리는 것이 바로 이들입니다. 양수성 식물인 산딸기는 햇빛이 쏟아지는 교란지에 대군집을 형성하여 빠르게 땅을 뒤덮습니다. 그 덕분에 헐거워진 토양은 유실을 면하고, 덤불 아래 습기가 유지되면서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됩니다. 숲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맨 앞줄에서 희생하는 숲의 구원자인 셈입니다.

안토시아닌과 비타민C가 가득

산딸기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영특한 구석이 많습니다. 줄기는 1~2m 높이로 곧게 서지만 끝부분은 겸손하게 약간 처집니다. 잎은 마치 단풍나무 잎처럼 3~5갈래로 얕게 갈라져 있어 '단풍딸기'나 '수리딸기'와 헷갈리기도 하지만, 꽃이 피는 모양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산딸기는 가지 끝에 흰 꽃들이 모여 피는 '산방꽃차례'를 이루어, 꽃이 하나씩만 피는 다른 형제들과 차별화됩니다.

무엇보다 산딸기의 정점은 열매에 있습니다. 수많은 작은 알갱이(소핵과)가 옹기종기 모여 하나의 둥근 열매를 이루는 '취과' 형태인데, 잘 익은 산딸기를 따보면 중심부의 꽃받침(화탁)으로부터 알맹이만 쏙 빠져나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산딸기 속이 비어 있는 모자 모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부드러운 과육 안에는 안토시아닌과 비타민 C가 가득 들어 있어, 예로부터 한방에서는 자양강장과 지혈의 약재로 귀하게 대접해 왔습니다.

죽림에는 호랑이가 있고 산딸기 밑에는 뱀이 있다.

하지만 산딸기를 채취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죽림에는 호랑이가 있고 산딸기 밑에는 뱀이 있다'는 옛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산딸기가 우거진 덤불은 가시 덕분에 초식 동물의 접근이 어렵고 소형 동물들에게 안전한 은신처가 되는데, 이를 노리는 뱀들이 덤불 아래 몸을 숨기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맛있는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경계심과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자연의 가르침일지도 모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딸기의 꽃말은 '애정결핍'입니다. 그토록 풍성하고 달콤한 열매를 맺으면서도 왜 이런 외로운 꽃말을 갖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숲이 안정되고 큰 나무들이 우거져 그늘이 깊어지면, 햇빛을 사랑하는 산딸기는 조용히 자취를 감추기 때문일 것입니다. 숲의 회복을 돕고는 정작 본인은 조용히 사라지는 그 뒷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여 그런 이름이 붙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여름 산행길, 붉은 갈색 줄기에 돋은 날카로운 가시를 헤치고 산딸기 한 알을 입에 넣어 봅니다. 톡 터지는 과즙과 함께 퍼지는 새큼한 맛은 숲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생생한 에너지입니다. 척박한 땅을 제일 먼저 찾아와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뱀의 위협과 가시의 고통을 견뎌낸 끝에 맺힌 이 작은 보석. 이번 여름에는 산딸기 아래서 단순히 열매의 맛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 숲을 살리는 선구자의 헌신과 대담함도 함께 맛보시길 권해 봅니다. 숲의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우리를 기다리는 은빛 꽃과 붉은 열매의 이야기는 오늘도 바람을 타고 산길을 따라 흐르고 있습니다.

하늘과 맞닿은 초록의 바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

강원도 태백,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매봉산(1,303m)은 백두대간의 거대한 줄기에서 낙동정맥이 힘차게 분기하는 지점입니다. 매봉산은 ‘매의 형상을 닮았다’하여 붙여졌다고 합니다. 매봉산의 본래 이름은 천의봉(天儀峯)으로 하늘을 들어 움직일 만큼 거대하고 웅장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천의봉(天衣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하늘이 내려준 옷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이 산자락 해발 1,286m 지점에는, 우리가 흔히 '바람의 언덕'이라 부르는 이국적이고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천연의 청량제, 초록의 물결

바람의 언덕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시야를 가득 채우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물결입니다. 약 132만㎡(4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배추밭은 한여름이면 마치 산등성이에 초록색 바다를 옮겨 놓은 듯한 장관을 연출합니다. 도심의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불볕더위 속에서도 이곳의 7~8월 평균 기온은 12도에서 19도 내외에 머뭅니다. 초속 5~8m로 불어오는 서늘한 고산의 바람은 피부에 닿는 순간, 일상의 피로와 열기를 단숨에 씻어내 주는 천연의 청량제입니다.

화전민들의 치열한 삶터

하지만 이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우리 선조들의 눈물겨운 개척사가 숨어 있습니다. 지금의 장관은 1960년대, 가진 것 하나 없던 화전민들이 맨손으로 거친 산을 일구며 시작되었습니다. 척박한 돌밭을 골라내고 흙을 다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고랭지 채소밭을 조성한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슴 벅찬 '힐링'의 장소가, 사실은 누군가의 생존을 건 '치열한 삶터'였음을 깨닫는 순간, 눈앞의 초록빛은 더욱 숭고하게 다가옵니다.

이색적인 풍경, 풍력 발전단지

2000년대 들어 이곳에는 또 다른 풍경이 더해졌습니다. 거대한 흰색 날개를 가진 17기의 풍력발전기들이 능선을 따라 세워진 것입니다. 구름을 가르며 천천히 돌아가는 발전기의 모습은 초록색 배추밭과 대비를 이루며 마치 북유럽의 어느 고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이색적인 풍광 덕분에 매봉산 풍력 발전단지는 '2021 산업관광 12선'에 선정되었으며, 태백 8경 중 하나로 꼽히며 수많은 관광객과 사진 동호인들의 발길을 이끄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어깨 위에 내려앉은 은하수

해 저문 뒤의 바람의 언덕은 또 다른 우주를 선사합니다. 광활한 벌판 위로 쏟아지는 은하수와 별들의 궤적은 장관이 따로 없습니다. 인공의 불빛이 차단된 이곳에서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우주의 거대함 앞에 인간의 고민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배추밭 뒤로 펼쳐지는 성단(星團)의 풍경은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잊을 수 없는 영혼의 안식을 제공합니다.

삶의 치열함이 쉼표가 되는 곳

바람의 언덕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고. 쉼 없이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날개처럼 우리는 늘 바쁘게 움직이지만, 때로는 이곳의 배추들처럼 고요히 대지의 기운을 받아들이며 익어갈 시간이 필요합니다. 화전민의 땀방울이 초록의 기적으로 변했듯, 우리의 고단한 일상도 이곳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금 일어설 용기로 변모하기를 바래봅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바람이 머물다 가는 그 언덕에서 여러분도 자신만의 은하수를 발견해 보시길 권합니다. 삶의 치열함이 쉼표가 되는 곳, 매봉산 바람의 언덕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수령, 세 갈래 길 위에서 흐르는 삶의 문장

태백에서 강릉 방향으로 국도 제35호를 따라 굽이진 길을 오르다 보면, 해발 935m의 정점에 다다릅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그곳에 서면, 백두대간의 웅장한 등줄기가 동남쪽으로 낙동정맥을 갈라놓으며 빚어낸 지형적 경이로움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삼수령(三水嶺)'입니다. 이곳은 단순히 높은 고개가 아닙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 한 방울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세 바다의 분수령'입니다.

이곳은 '피재(避岾)'라는 또 다른 이름을 품고 있습니다. 옛날 삼척 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이상향인 태백 황지 지역으로 넘어오던 고개라는 뜻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통로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꿈꾸는 희망의 언덕이었을 이 고개는 오늘날 국도 제35호선이 지나는 지리적 요충지가 되어 여전히 수많은 삶의 궤적을 잇고 있습니다.

서해, 남해, 동해로 흐르는 세 개의 물길

삼수령에 서서 눈을 감고 상상해 봅니다. 구름 사이로 떨어진 빗물 한 방울이 땅에 닿는 찰나, 지형의 미세한 기울기에 따라 그 아이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북쪽으로 구른 물방울은 검룡소를 지나 정선과 영월, 충주를 거치며 500km가 넘는 먼 여정 끝에 서해(황해)에 닿습니다. 남쪽으로 향한 물방울은 황지연못에서 솟구쳐 안동과 대구, 밀양을 지나 남해의 품에 안깁니다. 그리고 동쪽으로 몸을 틀어 짧고 가파르게 삼척을 향해 내려간 물방울은 오십천을 따라 동해의 푸른 물살이 됩니다.

한강의 발원지 - 검룡소

삼수령이 제공하는 가장 큰 인문학적 감동은 바로 '발원(發源)'에 있습니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儉龍沼)'를 떠올려 봅니다. 금대봉 자락 800m 고지에 위치한 이 신비로운 소는 사계절 내내 9도의 차가운 지하수를 하루에 수천 톤씩 뿜어냅니다. 석회암반을 뚫고 솟구치는 물줄기가 오랜 세월 바위마저 구불구불하게 패어놓은 모습은 마치 용이 꿈틀대는 형상입니다. 이 물은 지하로 스며들어 복류하다 다시 지상으로 나오기를 반복하며 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이룹니다.

낙동강의 발원지 - 황지연못

반면, 낙동강의 발원지는 태백 시내 중심부에 자리한 '황지연못(黃池蓮池)'입니다. 천의봉 너덜샘에서 시작된 기운이 이곳 상지, 중지, 하지 세 개의 연못에서 매일 5,000톤의 물로 용출됩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에서 솟아난 물은 황지천을 이루고 구문소를 거쳐 1,300리의 영남 땅을 가로질러 부산 을숙도 남해까지 흘러갑니다. 산꼭대기 고개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강물이라는 거대한 문장이 되어 국토를 적시는 셈입니다.

"어디로 흐르든, 결국은 바다에서 만난다."

우리네 삶 역시 삼수령의 빗물과 닮아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합니다. 내가 택한 이 길이 동해일지, 서해일지, 혹은 남해일지 알 수 없어 불안해합니다. 한 번의 선택으로 영영 서로 다른 운명을 살게 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삼수령은 우리에게 나지막한 위로를 건넵니다.

"어디로 흐르든, 결국은 바다에서 만난다."

북쪽으로 흘러 서해에 닿든, 남쪽으로 굽이쳐 남해에 닿든, 혹은 짧은 경로로 동해에 닿든, 모든 물방울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하나인 '바다'입니다. 우리 삶의 방향이 조금씩 다르고, 누군가는 멀리 돌아가며 누군가는 가파르게 내려가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본질적인 행복과 평온이라는 바다는 결국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삼수령의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마음속에 새로운 이정표 하나를 세워봅니다. 갈라진 운명을 한탄하기보다, 내가 흐르는 이 길의 풍경을 온전히 누리며 끝내 도달할 바다를 꿈꾸는 지혜를 배워갑니다. 피재를 넘어 황지로 향하던 옛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처럼, 우리도 삶의 고개를 넘어 자신만의 푸른 바다를 향해 묵묵히 흘러가야겠습니다. 하늘이 내린 세 갈래의 축복이 지금 우리 발밑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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